열두 가지 문장, 하나의 상황
일 년 치 기록을 인쇄해서 바닥에 펼쳤습니다. "특이사항" 칸만 뽑아서요.
지중관로 침수
관로에 물 참
맨홀 물고임
침수로 진입 불가
물이 차서 못 들어감
관로 침수 (배수 필요)
맨홀 내 물 다량
...
사람이 읽으면 다 같은 말입니다. 집계할 때는 일곱 개의 다른 항목이 됩니다.
그래서 "지난 일 년 침수가 몇 건이었나"에 아무도 답할 수 없었습니다. 답할 수 없으니 아무도 묻지 않았고, 묻지 않으니 아무도 이 데이터를 보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칸이 가장 안 쓰이는 칸이었습니다.
선택지로 바꾸되 탈출구를 남긴다
여덟 개 선택지로 바꿨습니다. 상상해서 만들지 않고 그 일 년 치 기록에서 뽑았습니다. 그리고 "기타"를 남겨, 기타를 고를 때만 자유 입력이 열리게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만든 뒤에 하는 일입니다. 기타 비율을 매달 확인합니다.
표가 넓으면 좌우로 스크롤하여 확인하세요.
| 기타 비율 | 해석 | 조치 |
|---|---|---|
| 20% 초과 | 선택지가 현실을 못 담는다 | 자주 나오는 문장을 항목으로 승격 |
| 5 ~ 20% | 적정 | 유지 |
| 5% 미만 | 과하게 세분화됐다 | 비슷한 항목을 합침 |
첫 달 기타가 34%였습니다. 자유 입력을 읽어보니 "관로 파손", "타 공사 간섭", "장비 고장" 세 가지가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항목으로 올렸더니 다음 달 12%가 됐습니다.
선택지는 완성품이 아닙니다. 계속 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정할 근거는 기타 칸이 매달 알려줍니다.
기본값을 현장 기준으로 잡는다
대부분의 항목에는 압도적으로 자주 나오는 값이 있습니다. 날씨는 대개 맑음, 작업 유형은 대개 정기 점검, 인원은 대개 2명.
그걸 기본값으로 넣으면 작업자는 다를 때만 손을 댑니다.
조작 횟수
기능 추가 없음
기능을 만든 게 아닙니다. 기본값만 넣었습니다. 조작이 6회 줄었습니다.
자동화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변경인데, 효과는 이후 어떤 단계보다 컸습니다. 가장 싼 개선이 가장 먼저 온다는 걸 여기서 배웠습니다.
단위는 화면에 박아 넣는다
파워 측정값 칸에 누군가는 이렇게 씁니다.
-21.3dB ← 부호와 단위 모두 입력
21.3 ← 부호 생략 (현장 관행)
-21.3 dBm ← 단위가 다름
-21 ← 소수점 버림
부호가 빠지면 값의 의미가 뒤집힙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부호를 빼고 말하는 게 관행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적습니다.
그래서 칸 옆에 단위를 고정으로 표시하고, 입력은 숫자만 받게 했습니다. 부호는 항목 성격에 따라 시스템이 붙입니다.
관행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관행이 그대로 통하게 만들었습니다.
검증은 막지 말고 알려준다
값이 이상하면 저장을 막을까 고민했습니다. 막지 않기로 했습니다.
현장에는 정말로 이상한 값이 나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게 오히려 중요한 정보입니다. 막아버리면 작업자는 통과되는 값을 넣습니다. 그 순간 데이터는 거짓말이 됩니다.
기준 범위 밖 → 저장은 되고, 노란 표시가 붙음
직전 값과 격차 → 저장은 되고, "지난번 -21.2였습니다" 안내
필수 항목 누락 → 이때만 저장 차단
막는 건 누락뿐입니다. 나머지는 알려주기만 합니다.
남은 문제
조작 횟수
되돌아오는 비율
지연 시간
거의 안 줄었다
앞의 둘은 움직였는데 지연 시간은 네 시간밖에 안 줄었습니다.
양식이 편해져도 여전히 저녁에 사무실에서 입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식을 고치는 것으로는 두 번째 입력을 없앨 수 없습니다.
다음 편에서 할 것
입력 자체를 현장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아무도 타이핑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모두가 하고 있는 행동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하고,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많이 하는 행동. 그걸 입력의 출발점으로 삼는 이야기를 다음 편에서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