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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o Technicus10 min

추천받은 취향은 누구의 것인가

마음에 들었다는 느낌과 내가 골랐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오늘 들은 노래도, 이번 주 본 영상도 누군가 골라서 올려 준 것입니다.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이 내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추천 시스템 연구 세 편을 읽으며 취향이 만들어지는 자리를 따져 봅니다.

추천받은 취향은 누구의 것인가
DMS / VISUAL ESSAY

오늘 들은 노래가 어디서 왔는지 떠올려 보세요.

검색해서 찾았다면 제가 고른 것입니다. 앱이 첫 화면에 올려 준 곡이라면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마음에 들어 끝까지 들었고, 그 기록이 다시 다음 추천의 재료가 되었을 테니까요.

이 과정에서 좋아한다는 느낌은 진짜입니다. 곡이 좋았던 것도 거짓이 아닙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묻고 싶습니다. 그 곡이 화면에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 곡을 좋아하게 되었을까요.

취향은 고르는 것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취향이라는 말에는 오래된 가정이 들어 있습니다. 내 안에 이미 좋아하는 것의 윤곽이 있고, 나는 세상에서 그 윤곽에 맞는 것을 찾아낸다는 가정입니다. 서점에서 책등을 훑다가 한 권에 손이 멈추는 장면이 그 그림에 가깝습니다.

이 그림에서 취향은 먼저 있고 선택은 나중에 옵니다.

추천 시스템이 들어오면 순서가 흔들립니다. 선택지가 수백만 개로 늘어나면 사람은 처음부터 훑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 먼저 추려 주어야 합니다. 추려진 목록 안에서 고르고, 그 선택이 기록되고, 기록이 다음 목록을 만듭니다. 취향이 선택을 낳는지 선택이 취향을 낳는지 말하기 어려운 고리가 생깁니다.

저는 이 고리를 나쁘다고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서점 직원의 추천도, 친구가 빌려준 앨범도 같은 고리를 가졌습니다. 달라진 것은 규모와 속도, 그리고 고리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창가 선반에 책과 음반이 섞여 꽂혀 있고 몇 권이 앞으로 살짝 나와 있는 가상 장면창가 선반에 책과 음반이 섞여 꽂혀 있고 몇 권이 앞으로 살짝 나와 있는 가상 장면원본 전체 보기

추천은 실제로 일을 합니다

먼저 이 기술이 얼마나 쓰이는지부터 확인해 두겠습니다.

넷플릭스의 카를로스 고메스우리베와 닐 헌트는 2015년 논문에서 추천 시스템이 회원이 매 접속마다 볼 영상을 찾도록 돕는 서비스의 핵심 축이라고 설명합니다. 논문이 쓰일 무렵 회원은 6,500만 명이 넘었고, 하루에 1억 시간 이상을 스트리밍했다고 합니다. 이 글이 인용하는 것은 규모와 위상까지입니다. 추천이 시청의 몇 퍼센트를 좌우하는지는 제가 이 논문에서 확인한 수치가 아니므로 쓰지 않겠습니다.

스포티파이 연구진도 비슷한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2020년 웹 콘퍼런스에 실린 앤더슨 등의 논문은 추천 시스템의 단기 이점은 잘 알려져 있지만 장기적 영향은 덜 이해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논문은 추천이 이용자가 듣는 음악의 폭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살핍니다.

추천은 장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듣는지에 실제로 개입하는 장치입니다. 그러니 취향과의 관계를 묻는 일도 과장이 아닙니다.

남의 선택을 본 사람은 다르게 고릅니다

추천이 취향을 바꾼다는 주장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실험입니다. 사회학자 매슈 살가닉과 피터 도즈, 던컨 와츠가 2006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실험이 자주 인용됩니다.

연구진은 인위적인 음악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참가자 14,341명이 처음 보는 곡들을 내려받았는데, 한쪽은 다른 참가자들이 무엇을 받았는지 알 수 없었고 다른 쪽은 그 정보를 볼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사회적 영향의 강도를 높이자 성공의 불평등과 예측 불가능성이 함께 커졌습니다. 또 성공은 곡의 품질로만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좋은 곡이 형편없는 성적을 내는 일은 드물었고 가장 나쁜 곡이 크게 성공하는 일도 드물었지만, 그 사이에서는 어떤 결과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실험은 추천 알고리즘을 직접 시험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선택이 보이면 같은 곡도 다른 운명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오늘의 추천 목록은 수많은 타인의 선택을 모아 나에게 보여 주는 장치이므로, 이 실험은 그 효과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거기서 곧바로 알고리즘이 취향을 조종한다는 결론으로 가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 논문이 말하는 것은 선택이 사회적 신호에 영향을 받는다는 데까지입니다.

편한 추천은 좁아지기 쉽습니다

그러면 추천을 많이 받는 사람의 취향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스포티파이의 연구가 하나의 단서를 줍니다.

연구진은 곡들을 함께 들은 기록으로 곡 사이의 거리를 재는 방법을 만들고, 이용자가 얼마나 다양하게 듣는지를 수치로 잡았습니다. 그 결과 두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다양하게 듣는 이용자일수록 유료 전환과 이용 유지 같은 장기 지표와 강하게 연관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추천을 통한 청취, 곧 알고리즘이 편성한 청취가 줄어든 다양성과 연관된다는 것입니다. 스포티파이 연구 블로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프리미엄 이용자는 직접 고른 스트림에서 더 다양하게 듣고, 알고리즘이 편성한 스트림에서는 덜 다양하게 들었습니다. 이용자가 시간이 지나며 더 다양해질 때는 알고리즘 청취에서 벗어나 직접 고른 청취를 늘리는 쪽으로 움직였다고 합니다.

해석에는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연구진 스스로 이 결과가 상관관계이며 여러 인과 설명과 양립한다고 밝힙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양하게 듣고 오래 머무는 것일 수 있고, 다양함을 추천이 아닌 다른 경로로 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연구진은 곡이 같은 재생목록에 함께 있을 확률을 다양성 척도로 썼는데, 이것은 일부 추천 알고리즘이 쓰는 원리와 닮았습니다. 이 점도 결과를 읽을 때 염두에 둘 일입니다.

저는 이 연구에서 한 문장을 얻어 갑니다. 추천은 지금 필요한 것을 맞히는 데 능하고, 그 능함이 곧 좁음과 가까울 수 있습니다. 논문도 같은 긴장을 짚습니다. 당장의 필요에 맞는 곡을 추천하는 일과 이용자가 오래 다양하게 머물게 하는 일이 서로 당기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용자가 더 좁게 듣는 쪽일수록 추천이 더 잘 통한다는 무작위 실험 결과도 이 긴장을 거든다고 논문은 말합니다.

취향은 어디에 남는가

세 연구를 이어 읽으면 이런 그림이 나옵니다. 추천은 규모가 크고 실제로 선택에 개입합니다. 선택은 남의 선택을 보면 달라집니다. 편성된 청취는 직접 고른 청취보다 좁은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취향이 알고리즘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증거가 거기까지 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취향이라는 말에 얹힌 가정은 조금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취향은 내 안에 완성된 채 있다가 세상에서 짝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마주친 것들 사이에서 자라납니다. 무엇을 마주치게 되는가가 취향의 재료입니다. 재료를 고르는 손이 내 것이 아니라면, 완성된 맛도 어디까지 내 것인지 묻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하나 생깁니다. 좋아한다는 느낌은 결과이고, 어떻게 마주쳤는지는 경로입니다. 우리는 결과만 보고 취향이라고 부릅니다. 경로가 보이지 않으면 그 취향에 대해 이유를 대기도 어렵습니다. 왜 이걸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계속 나와서"라고 답하는 것은 정직하지만 취향이라 하기엔 허전합니다.

빈 공책과 연필, 이어폰이 놓인 창가 탁자의 가상 장면빈 공책과 연필, 이어폰이 놓인 창가 탁자의 가상 장면원본 전체 보기

취향을 내 것으로 남기는 세 가지 방법

그만 쓰자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추천 덕분에 만난 곡과 글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다만 경로를 조금이라도 내 손에 남겨 두는 방법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출처를 적어 두는 것입니다. 마음에 든 곡이나 영상이 있으면 어디서 만났는지 한 줄 남깁니다. 추천 화면인지, 사람의 소개인지, 직접 검색인지 구분해 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취향의 입구가 어느 쪽에 몰려 있는지 보입니다.

둘째는 추천의 바깥에서 일정 비율을 찾는 것입니다. 스포티파이 연구에서 더 다양해진 이용자들은 직접 고른 청취를 늘렸습니다. 이 사실을 처방으로 확대해서는 안 되지만, 방향을 가늠하는 힌트로는 쓸 만합니다. 한 주에 한 번은 목록 없이 도서관 서가나 음반 가게, 누군가의 재생목록처럼 사람이 모은 곳에서 고르는 시간을 둡니다.

셋째는 싫어하는 이유를 말해 보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추천이 알아서 늘려 주지만, 싫어하는 이유를 문장으로 쓰는 일은 알고리즘이 대신해 주지 못합니다. 이유가 문장이 되면 그것은 적어도 내 판단입니다.

일터에서도 같은 질문이 생깁니다

이 질문은 음악 앱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업무에 AI를 들이는 팀이 자주 겪는 일이 있습니다. 초안을 만들어 주는 도구를 쓰다 보면 문서의 말투와 구성이 비슷해집니다. 누구의 취향도 아닌 평균에 가까운 문서가 쌓입니다. 이것을 취향의 문제로 볼지 품질의 문제로 볼지는 팀마다 다르겠지만, 도구가 올려 준 후보 안에서 고르고 있다는 사실은 같습니다.

이 글은 그런 현상을 측정한 연구를 인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연구들이 말해 주는 것은 추천 환경에서의 청취와 선택입니다. 업무 문서에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증거는 이 글에 없습니다. 다만 후보를 누가 올려 주는지 살피는 습관은 어느 쪽에서든 쓸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는 질문

마지막으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 곡이 화면에 올라오지 않았다면 저는 그 곡을 좋아하게 되었을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서점 구석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도, 친구가 틀어 준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취향도 만남 없이는 생기지 않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만남을 설계하는 쪽이 얼마나 보이는가입니다.

그래서 저는 취향을 지키는 일이 추천을 끊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디서 만났는지를 기억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좋아한다는 느낌 뒤에 경로를 하나 붙여 두면, 그 취향은 적어도 어디서 왔는지 아는 취향이 됩니다.

참고 자료

리도 프로필

리도 인사이트

기술을 현장 언어로 다시 풀어 쓰는 사람

3D 설계, 광통신 인프라 장비 개발, 글로벌 현장 교육을 19년 넘게 다뤄왔고, 요즘은 AI 자동화, 꿈꾸는 카메라, 실무 채널 운영을 연결해 복잡한 일을 더 쉽게 만드는 방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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