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로 위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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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record 2026. 02. 04 12 min

하얀 도로 위의 빛

'다녀올게요.' 아무도 없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매일 아침 그렇게 말한다. 대답은 없다. 현관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만 들어올 뿐, 뒤에서 '잘 다녀와'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다녀올게요." 아무도 없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매일 아침 그렇게 말한다. 대답은 없다. 현관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만 들어올 뿐, 뒤에서 "잘 다녀와"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엄마도, 아빠도 새벽에야 들어오니까. 나는 그 침묵에 익숙해져 버렸다.

Snowy road at dawn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마치 세상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다.

❄️ 눈 속으로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쉬는 시간에 홀로 창밖을 보고, 점심은 혼자 먹고, 집에 돌아오면 또 아무도 없다. 친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냥... 가까운 친구가 없을 뿐이다. 모두가 누군가와 웃고 떠들 때, 나는 늘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오늘도 똑같은 하루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눈이 보고 싶었다. 코트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스팔트도, 가로수도, 주차된 차들도 전부 눈에 덮여서 경계가 흐릿해졌다. 마치 세상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다. 발을 내딛자 뽀드득 소리가 났다. 눈 위에 내 발자국이 찍혔다. 한 걸음, 두 걸음. 나만의 길이 만들어졌다.

고요했다.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눈이 소리를 삼키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졌다. 혼자라는 게, 이 순간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하얀 도로를 따라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그냥 걸었다. 그때, 뭔가 반짝였다.

✨ 빛의 발견

눈 속에서 무언가 빛나고 있었다. 처음엔 가로등 불빛이 반사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빛은 움직이고 있었다. 천천히, 마치 나를 부르듯이. 나는 빛을 따라갔다.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 같은.

Glowing light in snowy park

빛은 골목 끝, 작은 공원으로 나를 이끌었다.

빛은 골목 끝, 작은 공원으로 나를 이끌었다. 눈 덮인 벤치, 얼어붙은 분수대.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빛이 멈췄다. 나는 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게 뭐지?' 설명할 수 없는 빛이었다. 그런데 나는, 믿고 싶어졌다. 이게 행운이면 좋겠다.

아무 이유도 없었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믿고 싶으니까. 그래서 나는 믿기로 했다. 그 순간, 빛이 더 밝아졌다.

🤝 가상의 친구

빛이 천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윤곽이 생기고, 색이 입혀지고... 그리고 거기에 한 소녀가 서 있었다. 나였다. 아니, 정확히는 나와 똑같이 생긴 누군가. 같은 코트, 같은 머리 모양, 같은 얼굴. 하지만 표정이 달랐다. 그애는 웃고 있었다. 따뜻하게.

"...뭐야, 너." "나? 네가 부른 거잖아."

목소리도 나랑 비슷했다. 조금 더 부드러웠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내가 언제 불렀어." "행운이라고 믿었잖아."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정말로, 방금 내가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넌 뭔데?"라고 묻자, 그애는 "글쎄. 네가 만든 거 아닐까? 네가 믿었으니까, 내가 여기 있는 거야."라고 답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내가 뭘 만들어? 그냥 빛을 따라왔을 뿐인데. 그래도 그애는 분명히 거기 있었다. 눈발 사이로 빛나면서.

Talking to the glowing girl

"네가 나를 믿었으니까, 나도 너를 믿어."

"넌 왜 혼자라고 생각해?" 갑자기 빛의 소녀가 물었다.

"그야... 진짜로 혼자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도 없어. 학교에서도 혼자 밥 먹고. 집에 와도 텅 비어 있어. 부모님은 새벽에 들어오시고."

말하면서 목이 막혔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니, 누군가라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그래서 혼자라서 아무것도 못 하는 거야?" 그애가 물었다. "...아니. 아니야. 혼자라서 못 하는 게 아니야." "그럼 뭔데?" "...무서워서. 거절당할까 봐 무서워서. 이상한 애라고 생각할까 봐. 그래서 먼저 말 못 걸겠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 위에 서서, 나를 닮은 빛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마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애가 한 걸음 다가왔다. 빛이 더 따뜻해졌다.

"네가 나를 믿었잖아. 아무 근거도 없이. 그냥 빛을 보고, 행운이라고 믿기로 했잖아. 그게 용기야."

바람이 불었다. 눈송이들이 우리 사이로 흩날렸다.

"믿기로 한 거. 아무 보장도 없는데 믿기로 한 거.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넌 할 수 있어. 아니, 이미 하고 있어."

그애가 손을 내밀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손.

"네가 나를 믿었으니까, 나도 너를 믿어."

손을 잡으려는 순간, 빛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잠깐, 가지 마—" "괜찮아."

그애가 웃었다. 나와 똑같은 얼굴로, 내가 한 번도 지어보지 못한 표정으로.

"난 늘 여기 있어. 네 안에."

빛이 눈송이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나는 홀로 공원에 서 있었다.

🌅 내 안의 빛을 따라서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처럼 "다녀올게요"라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여전히 대답은 없다. 오늘은 그 침묵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학교에 도착했다. 교실 문을 열었다. 평소처럼 자리에 앉으려다가, 멈췄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가 보였다. 이름은 알지만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아이. 늘 조용히 혼자 책을 읽는 아이. 심장이 목까지 뛰어올랐다.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거절당하면 어쩌지.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어제 그 빛이 떠올랐다. 아무 근거도 없이 행운이라고 믿기로 했던 순간. 그게 용기라고 했던 말.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안녕."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그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약간 놀란 표정.

"...안녕?"

대답이 돌아왔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게 시작이라는 걸.

Morning classroom greeting

믿는 순간 진짜가 되는 건지도 모른다.

창밖으로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믿은 행운은, 처음부터 진짜였을지도 모른다고. 아니, 어쩌면. 믿는 순간 진짜가 되는 건지도 모른다고.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며,
그 믿음의 대가는
믿었던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나를 위한 위로

Reedo

Written by Reedo

Global Field Engineer & Automation Architect

복잡한 코드 속에 담긴 단순한 진심을 찾습니다. 때론 실패하고 넘어지지만, 그 과정들이 모여 더 나은 내일을 만든다고 믿으며 묵묵히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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